참회록, 허연

paradise
2016.11.10

영혼이 아프다고 그랬다. 산동네 공중전화로 더 이상 그리움 같은 걸 말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도 않겠다고 고장난 보안등 아래서 너는 처음으로 울었다. 내가 일당 이만오천원짜리 일을 끝내고 달려가던 하숙촌 골목엔 이틀째 비가 내렸다.


나의 속성이 부럽다는 너의 편지를 받고, 석간을 뒤적이던 나는 악마였다. 십일월 보도블록 위를 흘러다니는 건 쓸쓸한 철야기도였고, 부풀린 고향이었고, 벅찬 노래였을 뿐. 백목련 같았던 너는 없다. 나는 네게서 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떨리는 손에 분필을 들고 서 있을 너를 네가 살았다는 남쪽 어느 바닷가를 찾아가는 밤 기차를 상상했다. 걸어서 강을 건너다 아이들이 몰려나오는 어린 잔디밭을 본다. 문득 너는 없다. 지나온 강 저쪽은 언제나 절망이었으므로.


잃어버렸다. 너의 어깨를 생머리를. 막차시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빗줄기는 그친 다음에도 빗줄기였고. 너는 이제 울지 못한다 내게서 살지 않는다. 새벽녘 돌아왔을 때 빈 방만 혼자서 울고 있었다. 온통 젖은 채 전부가 아닌 건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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