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우연, 이운진

paradise
2016.11.10


우주를 가로질러 오는 

그대가 만약 그라면 

나는 지구의 속도로 걸어가겠어 


시속 1674km의 걸음걸이에 신발은 자주 낡겠지만 

지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건 

사람을 믿는 

이 별의 아름다운 관습처럼 살고 싶어서였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단단한 국경선인 마음을 넘어 

천 년 넘은 기둥처럼 

그의 곁에 조용히 뒤꿈치를 내려놓는 일이야 


눈부신 밤하늘의 정거장들을 지나 

지구라는 플랫폼으로 그가 오면 

풀잎이 새에게 

호수가 안개에게 

바위가 바람에게 했던 긴 애무를 

맨발로 해 주겠어 


첫 꿈을 깬 그대에게 적막이 필요하다면 

돌의 침묵을 녹여 

꽃잎 위에 집 한 채를 지어주겠어 

그것으로 나의 정처를 삼고 

한 사람과 오래오래 살아본 뒤에도 

이름을 훼손하지 않겠어 

지구에서의 전생을 잊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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