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와 밤의 열차,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기대에 찬 기적이 울려올 때면, 우리는 또 놀란 눈을 하고 멈춰 선다. 온 세상을 뒤집어엎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뇌우처럼 다가올 때, 우리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서 있다. 다시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지며 울려댈 때까지 우리는 그을린 뺨으로 여전히 서 있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기적 소리. 외침 소리. 본래 그것은 무無였다. 혹은 모든 것이었다. 우리처럼.

 그들은 감옥의창가에서 달콤하고 위태로운, 기대에 찬 리듬을 두드린다. 그러면 너, 마음 약한 죄수는 귀가 된다. 문 두드리며 달려오는 밤의 열차에 너는 끝없이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비명과 기적 소리는 네 감방의 부드러운 어둠을 고통과 욕망으로 뒤흔들어놓는다.

 혹은 네가 밤에 열병을 잠재우고 있을 때면 그들은 포효하며 침대 위로 무너져 내린다. 그러면 달빛처럼 파란 혈관들이 전율하면서 노래를, 화물열차의 노래를 받아들인다. 간다ㅡ 가고 있다ㅡ 가고 있다ㅡ 이때 네 귀는 끝 모를 심연이 되어 이 세상을 집어삼킨다.

 가고 있다. 그러나 열차는 항상 너를 역 위에 뱉어내고, 이별과 출발은 피할 길이 없다.

 

(...)

 

 너 자신이 철로다. 녹슬고 얼룩이 진, 은빛으로 반짝이고 아름답고 막연한 철로다. 너는 정거장으로 나뉘고, 역과 역 사이에 묶여 있다. 정거장들에는 표지판이 있고, 저기 여자가, 달이 혹은 살인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다.

 너는 열차다. 덜커덩거리며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열차다. 너는 철로다. 온갖 일이 네 위에서 일어나고 너를 녹슬어 눈멀게 하고 은빛으로 반짝이게 한다.

 너는 인간이다. 너의 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도 없이 긴 목 위 어디엔가 붙어 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