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대화,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

 

우리 마음속의 비웃음, 우리에 대한 비웃음에 내맡겨진 채? 슬픔과 눈물에, 공포의 울부짖음에, 밤의 울부짖음에 내맡겨졌나? 아마 그럴지도? 내동댕이쳐진 거야? 혹시 갈 길을 잃었나? 우리는 대답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거야? 우리가, 우리 자 신이 그 대답일까? 아니면, 자 대답해봐. 말해보라고. 종국에는 결국 우리 자신이 그 대답인 걸까? 우리는 그것을, 그 대답을 죽음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지니고 있는 걸까? 애초부터? 우리는 우리 안에 죽음과 대답을 함께 지니고 다니는 걸까, 그래? 그것이 우리에게 대답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걸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내맡겨져 있는 걸까?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말 좀 해봐, 응? 우리 자신이 대답인 걸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 자신에 의해 내맡겨져 있는 걸까? 그래? 그런 거냐고!

 

(...)

 

저 위 높은 천장에는 석회 반점이 서서히 밝아진다. 저 밖에서는 달과 가로등이 별이 창백하고 희미해진다. 광채도 의미도 없이 흐릿하다.

그리고 저 밖에 도시가 있다. 우울하고 어둡고 위협하는 몸짓으로. 도시다.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선량한 도시다. 말없고 거만하고 돌로 된 불사의 도시다.

그리고 저 밖에, 도시 외곽에 서리처럼 순수하고 투명하게 새 아침이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