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우리는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에게 깊이는 끝 모를 나라이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젊음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도 없고 제약도 없고 보호막도 없다 ㅡ 그런 우리를 경멀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으로 어린 시절 울타리에서 내쫓긴 세대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모진 바람이 몰아칠 때 우리의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신을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이 없는 세대다. 우리는 만남도 없고 과거도 없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 발과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거리, 한 길 넘게 눈쌓인 거리를 헤매는 집시로 만들어버린 이 세상의 모진 바람이 우리를 이별 없는 세대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의 삶을 살 수 없으며, 또 이별의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 우리의 발길이 정처없이 거리를 헤매는 동안, 집시처럼 떠도는 우리의 마음에는 끝없는 이별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침의 이별을 맞게 될 하룻밤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둬야 하는가? 우리는 그 이별을 참아내려하는가? 우리와 달리 매초마다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는 그대들처럼 우리가 이별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그 어떤 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커다란 물줄기로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우리 조상들이 쌓은 둑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이 1킬로미터 간격으로 기라에 선 이별을 살아낸 것처럼 그렇게 살아낼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

 

그대들이여, 우리에게 우리 마음이 침묵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에 말할 소리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 마음은 만남도 이별도 모두 입에 담지 않을 뿐이다. 만약 우리 마음이 우리가 겪은 모든 이별에 애태우고 슬퍼하고 위로하며 피 흘린다면 우리는 그대들에 비할 수 없이 많은 이별을 해야 할 터이니, 우리의 예민한 마음이 내지르는 비명이 너무도 커서 그대들은 밤마다 침대 밑에 앉아 우리를 위한 신을 간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우리는 이별을 부인하며, 아침에 잠든 이별을 놔두고 떠난다. 이별을 막고 이별을 아낀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헤어지는 이들을 위해 이별을 아껴두는 것이다. 마치 도둑처럼 우리는 이별 앞에서 몸을 숨기며 서로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사랑을 취하고 이별은 거기 그대로 남겨둔다.

 

우리 삶은 만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만남들은 짧고 이별도 없다. 마치 별들처럼. 별들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 잠시 함께 있다가 다시 멀어진다. 자취도 없고, 속박도 없고, 이별도 없이.

 

우리는 스몰렌스크의 성당 아래에서 만나,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가 된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노르망디에서 만난다. 부모와 자식처럼.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핀란드의 호숫가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을 속삭인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베스트팔렌에 있는 농장에서 만나, 서로 즐기다가 아이를 낳는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도시의 어느 지하실에서 만나고,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이다.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실컷 잠을 잔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에게는 만남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이별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마음이 내지르는 비명을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슬그머니 도망친다. 우리는 귀향 없는 세대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도 없고 마음 줄 이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 귀향 없는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도착의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별에, 새롱누 삶에 다다르는 도착의 세대다. 새로운 태양 아래, 새로운 마음에 다다르드는 도착의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사랑에, 새로운 웃음에, 새로운 신에게 다다르는 도착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도착이 우리의 것임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