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창백한 형제,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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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요일 아침 중에서 가장 깨끗한 아침에 내린, 일찍이 본 적 없는 하얀 눈 속의 얼룩이었다. 피와 눈과 태양은 짙은 뉘앙스를 풍기는 정취 넘치는 전쟁화이자 수채화 물감을 위한 매혹적인 소재다. 따뜻한 김이 나는 피를 품고 있는 차갑고 차가운 눈,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떠 있는 사랑스러운 태양. 우리의 사랑스러운 태양.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말한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태양아. 그 태양이 죽은 자를 비추고 있다. 그는 모든 죽은 꼭두각시들이 그렇듯이, 일찍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을 내지른다. 소리 없는, 무시무시한 침묵의 비명! 우리 가운데 누가, 오 일어나라, 창백한 형제여, 우리 가운데 누가, 철삿줄이 끊어져 바보처럼 뒤틀린 채 무대 위를 나뒹굴며 질러대는 저 꼭두각시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견뎌낼 수 있을까? 누가, 오, 우리 가운데 누가 죽은 자들의 저 소리 없는 비명을 참아낼 수 있을까? 눈만이, 얼음처럼 찬 눈만이, 그것을 견뎌낸다. 그리고 태양, 우리의 사랑스러운 태양만이 그것을 참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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