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0 Posts

Owol - Why?

paradise
2017.03.19
Owol - Why?

들개의 부활, 박은정

paradise
2016.11.20
너는 죽었다 무표정하게,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검은 구멍만을 열어둔 채, 무엇이 두려워서 매일 잠 속에서 보내는 거지? 일 년이 하루처럼 흐르고 하루가 일 년처럼 흐르는 이곳에선 겨울보다 빨리 봄이 오는데, 죽은 자의 마음으로 창을 열어봐 누군가 긴 제문을 읽는 동안 낙엽이 이마 위로 쌓이고 죽은 나무 위로 눈이 내리기도 하였지만, 검게 윤이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너는 벌레처럼 어미의 얼굴에 들러붙어 울음을 구걸한다 네 부패하는 시간을 위해 환기가 필요해 잠든 얼굴이 흘리는 태몽을 견디며, 숨기고 싶던 목숨이라는 말, 넘쳐서 죽어버릴 그런 불멸이라는 말, 너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건 들판의 시간들일 뿐, 앓던 얼굴이 침묵으로 잠들고, 그렇게 어둠 속에서 먼지 쌓인 정물이 되어가는 거, 그러나 ..

천호동, 허연

paradise
2016.11.12
후회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는 뻘에다 완성되지 못한 낱말들을 적었다. 생애를 다 볼 수 없었으므로 그 여름 낮게 날아가는 새들은 지저분한 털뭉치 같았고 강 건너에선 기울어진 매운탕집 간판들이 울먹이고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 기침을 하던 너의 슬픔을 가져오지 못한 게 아주 오래 아프다. 스물여섯살, 천호동엔 비가 샜고 낡은 관악기 같은 목젖에선 피가 새어 나왔다. 눈앞에선 여름내 동쪽에서 왔다는 부표들이 소혹성처럼 떠올랐다. 아침이면 아무르에서 왔다는 새를 보러 가곤 했다. 그해, 고양이들이 부르르 몸을 떨고 나팔꽃들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 아프자고 너는 떠났고 나는 질퍽이는 뒷골목을 걸어 강으로 갔다. 마음의 짐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 물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이 놀라운 강의 밀도.

사는 게 숨이 차요 外

paradise
2016.11.12
​​​​​​​​​​

나쁜 꿈, 김하늘

paradise
2016.11.10
캄캄한 그 어디에서도 지금 잡은 내 손을 놓지 마. 네가 실재하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해. 우린 불편한 영혼을 공유했잖아. 우리는 미래가 닮아있으니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서 좋아. 주머니에 늘 수면제를 넣고 다니는 습관까지. 칼자국이 희미해지지 않는 자해의 흔적까지. 유령처럼 하얗고 작은 발가락까지. 비릿하고 나쁜 꿈을 꾸고 일어나면 온 몸에 개미 떼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나쁜 게 뭘까. 좋고 싫은 건 있어도 착하고 나쁜 건 모르겠어. 근데 오늘 우리는 나쁜 꿈속에 버려져 있는 것 같아. 세상에 너하고 나, 둘 뿐인 것 같아. 가위로 우리 둘만 오려내서 여기에 남겨진 것 같아. 이런 게 나쁜 거야? 난 차라리 다행인데. 유서를 쓸 땐 서로 번갈아가면서 쓰자. 네가 한 줄, 내가 한 줄, 이 개 같..

열사병, 조혜은

paradise
2016.11.10
열사병 ㅡ뜨거운 이별 추워질 거야 금방, 당신은 말했지만 굴곡이 깊은 당신의 몸에서는 하루 종일 뜨거운 말들이 배어났어요. 펄펄 끓던 당신의 목소리. 하지만 고르게 교정된 당신의 고백들은 뼛속부터 딱딱했고. 틀어진 발음 하나에도 쉽사리 부서지던 방. 에어컨이 켜진 모든 방에서는 비가 내렸어요. 훼손된 기억과 가물어가는 신체의 일부가 가느다랗게 쏟아져 내리던 방, 당신과 함께한 하루는 우림으로 빛났고. 눅눅하고 틀어진 방에서 나는 가지런히 닫힌 당신의 항문을 애도하며, 오래돼 구부러진 너의 조각 속에 내 몸을 가까스로 얹고 맞추고. 오늘, 치열이 고르지 못했던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나의 꿈속에서 무섭게 실종돼버린 너의 온도. 오늘 나는 당신 앞에서 덧니를 드러내고 누구보다 활짝 웃어도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