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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린, 유진목

paradise
2021.05.07
하루는 보다 못한 그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할린에게 물어보라 했다. 할린은 죽은 자이지만 묻는 것에 대답하는 자이며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지만 믿기도 하여서 할린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나는 내가 죽는 날을 알고 싶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날을 향해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아마도? 나는 어떻게 죽는지 그 또한 알고 싶었다. 그런 게 왜 알고 싶어? 넌 알고 싶지 않아? 난 알고 싶지 않아 네가 알게 된 것을 내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언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싶어? 모르고 싶어 너는 알고 싶은 게 없어? 나는 알고 싶은 게 없어 아는 것도 전부 잊었으면 좋겠어 나도? 가끔은 너도 언젠가 그도 할린을 찾은 적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할린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트 M. 키스

paradise
2021.04.28
사람들은 흔히 비이성적이며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만약 당신이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다른 속셈을 숨기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대하라 만약 당신이 성공하려면 가식적인 친구들과 진정한 적들의 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만약 당신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더라도 사람들은 당신을 속여 마음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살아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여러 해 동안 흘린 당신의 땀방울을 누군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루려고 노력하라 만약 당신이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시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라 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paradise
2021.04.28
이 이야기는 꼭 편지 같다. 친애하는 당신에게 하고 나는 말할 테다. 이름 없는 당신에게라고. 이름을 붙이면 '당신'을 실제 세계에 연루시키게 될 텐데, 그러면 훨씬 더 위험해지고, 훨씬 더 부담이 커진다. 저 바깥 세상에, 당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당신, 옛날의 고리타분한 사랑 노래들처럼 그냥 당신이라고 부르련다. 당신은 꼭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당신은 수천 명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은 아니다, 당신에게 말하겠다. 당신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다고 가장하련다. 하지만 소용없다. 당신은 듣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 그 사람은 괴물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그이를 괴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 여자는 ..

아란카,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내 무릎에 닿는 네 무릎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네 주름진 콧잔등이 내 머리칼 어디에선가 울고 있겠지. 너는 파란 꽃병과 같고 과꽃처럼 피어난 네 두 손은 떨리면서 벌써 내게 왔구나. 벼락 아래서 우리 둘은 사랑, 고통 ㅡ 죄악으로 웃고 있지.

전설,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저녁마다 그녀는 잿빛 고독 속에서 기다리며 행복을 갈구한다. 아, 그녀의 눈동자 속에 젖어 있는 슬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다. 어느 날 밤 어두운 바람의 마법으로 그녀는 가로등이 되었다. 그 불빛 아래 행복한 사람들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너를 좋아한다고ㅡ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 볼프강 보르헤르트

paradise
2021.04.28
(...) 그들은 옷과 살갗을 뒤집어쓴 채로 그런 것이 아주 귀찮다는 듯이 매달려 있었다. 옷이 그리고 살갗이. 그들은 유령이었는데, 바로 이 살갗으로 분장을 하고 오랫동안 인간 행세를 해온 것이다. 그들은 막대기에 매달린 허수아비처럼 자신들의 해골에 매달려 있었다. 자기 뇌의 조롱을 받으며 자기 심장의 고통을 느끼며, 삶에 의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란 바람이 그들을 데리고 놀았다. 그들을 데리고 놀았다. 그들은 삶을 뒤집어쓴 채 매달려 있었고, 얼굴 없느 신에 의해 매달려 있었다. 선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신에 의해. 신은 그저 존재할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신이 그들을 삶에 매달았으므로 그들은 잠시 거기서 시계추처럼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