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밤, 유진목

paradise
2021.05.07

 

 

오랫동안 달리고 있었어

능선부터 밝아 오는 가느다란 길을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곧고 구부러진 길을

 

멀리서 다가오는 두 개의 헤드라이트

저 멀리 점멸하는 붉은 후미등

 

내가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너도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산을 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눈발과

잠깐씩 드러나는 길

 

너를 떠나기로 해서 미안해

 

후회하지 않은 적은 한순간도 없었어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몇 날 며칠을 달리는 동안에

아름다운 광경을 봤어

 

너에게 모두 말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까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알고 싶었어

 

내가 국경을 넘었을 때

 

휴게소에 잠시 멈췄을 때

 

이른 아침 처음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을 때

 

지도를 펼치고 내가 있는 곳을 찾을 때

 

밤새 달려도 불 꺼진 모텔 간판만 나타날 때

 

주차장에서 웅크리고 잠들었을 때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을 때

 

그게 너였으면 하고 바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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