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유진목

paradise
2021.05.07

 

 

이듬해 당신이 떠나며 잘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을 몰라서 흙을 한 줌 쥐었다 놓았다 내가 본 당신은 가슴이 아플 때 짓는 표정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얼굴을 어디에 두고 온지 몰라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을 텐데 당신이 떠난 뒤로 여러 번 무서운 생각이 들어 들창 밖을 내다보았다 밤과 낮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알 수 없는 꽃들이 피었다 지고 바람에 실려 미지근한 냄새를 풍기고 그해 겨울 리아스식해안에서 당신과 나는 동백을 던지며 놀았다 우리는 그때 통영에 갔었지요? 죽으면 나에게 돌아오라는 약속을 했지요? 마당에 나가 보니 죽은 지 오래된 개가 바람에 구르고 있더군요 기껏해야 몇 해 더 살겠지 하며 통과한 세월이 당신보다 많아졌다고 적는다 그래도 당신 너무 무서워 말아요 눈먼 자의 한숨처럼 여기는 들리기만 할 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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