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탄생, 유진목

paradise
2021.05.07

 

7막

 

/

 

나에게는 신이 있었다. 신은 수시로 찾아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했습니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고, 긴장한 탓인지 종일 두통이 있었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지금은 잠이 오지 않아 괴롭습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점심에는 수제비를 먹었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 참, 그 집은 언제라도 다시 가 볼 생각입니다. 정말 맛있었거든요.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갑자기 햇빛이 쏟아져 눈을 감았습니다. 대답을 이어 가는 동안에는 별것 아닌 일들이 즐겁게 혹은 애틋하게 느껴졌다.

 

신은 다른 대답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좀 더 특별한 무엇인가를. 그러나 내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러자면 거짓말을 좀 해야 했는데 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신은 간단히 질문을 하고 듣는 시늉 없이 곧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나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신이 줄곧 듣고 있다는 간결한 믿음이. 나는 신에게 묵묵히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신은 그다음 질문을 이어 가는 방식으로 듣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하였다.

 

당신은 왜 죽으려고 했습니까?

 

나는 신이 그 일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 신은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신은 나의 마음과 같았다. 그러나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았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하고서 잊어버린 것들은 그게 무엇인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오랜 질문이 있은 뒤에 신은 결국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 다다랐다. 그날 나는 사람을 하나 죽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하나 죽이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죽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그는 저절로 죽었으면 한다.

 

나는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늘 신과 함께였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처음으로 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신은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당신은 있기는 한 것입니까? 그때였다. 정말로 그를 죽이고 싶습니까?

 

나와 신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paradi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유진목  (0) 2021.05.07
시항, 유진목  (0) 2021.05.07
피망, 유진목  (0) 2021.05.07
로즈와 마리, 유진목  (0) 2021.05.07
국경의 밤, 유진목  (0) 2021.05.07